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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시민이야기

산을 오르는 단 한가지 이유

by Peeling 2023. 10. 8.

100번의 글쓰기 중 첫 번째 글


산을 오르는 단 한가지 이유

올초 산행을 계획하고 첫 산을 오르기 까지 8개월이 걸렸다.
뭐가 그리 바빠나?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 산에 오르지 못할 99가지 이유를 찾고 있었을 뿐이다.
그저 등산화를 신고 집앞으로 한걸음 나오면 됐던 것이다.

산을 오를 단 한가지 이유로 나는 어제 첫 산행에 성공했다.
지금은 상처뿐인 성공을 스스로 자축하며 글을 쓰고있다.
첫 산행의 평가는 최하점이다. 이겨도 이긴것 같지 않은 찌질한 승리. 나는 힘들고 아프고 괴로웠다.

우선 일년 사이 8킬로나 무거워진 몸의 무게에  압도되었다.
와 ~ 우 중력의 위대함을 온 몸으로 느끼며 낑낑대다 일찌감치 다른 등산객에 선두를 내어주었다.
정상을 올려다보니 참으로 위풍당당했다. "올라와 봐라~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서 나는 꿈쩍도 않고 여기  서 있을 터이니......."
"내가 작년 초에는  10시간 산행으로 정상 3개를 찍었던 몸이야. 기다려 늦어도 꼭 찍는다 정상. 넌 내가 찍을 100개의 정상 중 하나일 뿐이라구."

6시간만에 정상을 찍고 하산했다. 그렇다고 해서 산이 순순히 정상을 허락하진 않았다. 나는  넘어지고 후회하고,
또 지치고 화가났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단 앞어서 발걸음을 멈추었고 지금 당장 하산 해야할 99가지 이유를 서둘러 찾았다.

이를 악물고 싸워서 정상을 찍고 내려오는 길은 산을 오를 때보다 더 비참했다. 떨리는 무릎과 발의 통증 그리고 생전 이런곳이 아플수도 있구나 싶은 곳의 통증으로 말을 잃었다.
반쯤 풀린 몸뚱아리는 이미 감각을 잃어버려 내몸이 아니 것 같은 착각마쳐 들었다.

지금  휴식을 취하며 어제의 산행을 돌이켜 보면 나는 내 몸에대해 참으로 무지했다. 작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몸무게도 늘고 운동은 숨쉬기 운동이 전부였던 내몸.
매일 저녁 폭식에 함께하는 음주 그리고 아침 숙취와 때늦은 후회로 나는 3개월 전 대사증후군 증상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의사로 부터 들었던 몸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데  나는 수없이 오르던  어제의 산은 훤히 알고 있었지만 정작 내 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질 수 밖에.
정상을 올랐으니 그래도 이긴 게임이 아니냐고?
아니다. 이겨도 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산을 오르는 것은 한번의 게임으로 끝나는 그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제의 산행이 단 한번의 일회성 행사였다면 나는 승리했다. 좀 찌질했지만 다신 그 산을 오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을 오르는 것은 삶을 살아 내는 것과 같다.
오늘 산의 정상을 찍었더라도 다음에 다시 산을 오르고 정상을 찍고 내려와야 한다. 오로지 나를 사용해서 나를 믿고 말이다.
어제의 산행은 질 수 밖에 없었지만 남은 99번의 산행이 남아있다. 나는 전열을 가다듬고 나를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산을  오르지 않아도 될 99가지 핑계너머 산을 오를 단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구하면 얻으리라"  아니 "오르면 찾으리라"




오늘 비오는 날 아들과 함께 임도 걷기입니다""
뭉친 다리를 풀겸 가볍게 오른 동네 뒷산 활공장
날이 좋으면 라이딩하는 장관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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