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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이기적인 착한 사람의 탄생] [이매진 빌리지에서 생긴 일]

by Peeling 2023. 4. 28.
'왜 저항하지 못할까?'

‘왜 저항 하지 못할까’의 주제는 자본주의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왜 저항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힘든 상황임에도 사람들이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를 권력의 통치술 때문이라고 보며 ‘팬옵티콘’이라는 감옥의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는데, 팬옵티콘은 일종의 감옥으로, 감옥의 가운데 있는 원형감시탑에서는 빙 둘러 있는 감방의 죄수들을 볼 수 있지만, 죄수들은 컴컴한 감시탑을 볼 수 없어 죄수들은 간수가 자신을 보는지 안 보는지 알 수 없는 구조이다. 이러다 보니 죄수들은 간수가 계속 자기를 본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결국 감시가 내면화된다는 것이다.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최소의 인원으로 모든 사람을 가장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도록 고안한 ‘팬옵티콘’은 공리주의 창시자인 벤담이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 가능한 사회를 구상하며, 전체의 쾌락을 높이는 방법이 무엇일까? 에 대한 고안으로 만들어낸 장치이다. 벤담이 팬옵티콘을 통해 통제하고 싶어 하는 핵심 영역은 노동으로 고통스러운 상황이나 일하는 사람이 고통을 덜 느끼면 그것은 쾌락의 총량을 늘리는 일이 된다고 보았다. 벤담은 팬옵티콘 장치가 이 기능을 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즉 노동자들이 노동 윤리를 내면화하게 되면 노동은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야 할 일이 된다. 하지만 ‘왜 저항하지 못할까?’에서는 이것을 민주주의의 “ 거대한 후퇴”라고 말한다. 왜 민주주의의 후퇴인가?

영화 <식코>를 제작한 마이클 무어 감독은 <트럼프 랜드에서의 마이클 무어>라는 영화를 만들고 극장에서 ‘트럼프는 왜 이길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크쇼를 했다. 이것은 트럼프가 이길 것을 전제로 한 것으로 대통령 선거가 있기 몇 개월 전이기 때문에 놀라움을 주고 있다. 무어는 “트럼프는 철저하게 그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적극적인 지지층이 있어 이길 것이다. 그 결과 부드러운 파시즘이 탄생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부드러운 파시즘은 상냥한 파시즘이라고도 하는데 무기와 칼을 갖고 시민들을 억압하면서 등장하는 파시즘과 달리, ‘너희들 편이야’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동일한 생각을 갖고 동일한 행동을 할 준비가 되어 있는 파시즘이 등장한 것이다. 헨리 찰스(Henry Charles)교수는 “거대 기업과 거대 정부가 통합되면 그 정부는 더 친절하고 더 신사적인 모습으로 값싸고 풍부한 물질적 풍요를 약속할 것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시민권과 정치적 권리를 포기해라, 대신에 모든 것을 해 주겠다.’이런 방식의 파시즘이 등장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한나 아렌트는 ‘독일의 시민들은 어떻게 독일 파시즘이 600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할 때 침묵했을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사실 침묵한 것이 아니라 암묵적으로 지지하고 있었던 것인데, 그 이유는 아무 생각이 없었던 것, 즉 사유불능 때문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즉 평범한 사람이 생각하지 않았을 때, 묵인하고 순응할 때, 악이 만들어 진다고 보았으며 이것이 악의 평범성 이라고 했다.
“평범한 사람이 아무 생각이 없었을 때 악이 만들어진다!”그녀가 집필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는 아이히만이라는 독일 장교는 예루살렘의 전범재판에서 자신은 학살에 가담했으나 죄인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는 “ 나는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왜 지금 와서 상을 주지 않고 처벌을 하는가.”라고 항변했고 한나 아렌트는 그에게서 사유불능과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찾아냈다. 트럼프 랜드에서 보면 미국이 시민들이 어떻게 보면 묵인하거나 순응했고 그 결과 부드러운 파시즘이 등장한 것 아닌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악의 평범성 개념과 마찬가지로 유사한 개념으로 라보에티에는 ‘자발적 복종’을 이야기 했는데, <자발적 복종>에서 라보에티에는 시간이 좀 지나면 복종이 나에게 주어진 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한다. 즉, 비판하지 않는 것이 나의 전제조건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어쩌면 자발적 복종을 한 것인지도 모른다. 생존의 위기 앞에서 그들은 시민으로서의 비판정신을 잊어버리고, 그러다가 비판 자체가 인간의 일임을 잊고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트럼프에게 자발적으로 복종한 것은 아닌가?